고우~공주들의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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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우~공주들의 전국~'은 2011년 방영된 NHK 대하드라마로, 아자이 나가마사의 딸이자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정실인 '고우'를 중심으로 세 자매의 삶과 전국 시대 역사를 그렸다. 우에노 주리, 미야자와 리에, 미즈카와 아사미 등이 출연했으며, 각본은 타부치 쿠미코, 음악은 요시마타 료가 담당했다. 하지만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성인 배우가 연기하고,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전개 등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제1회 신초 라즈베리상'에서 최악의 드라마로 선정되기도 했다. 평균 시청률은 17.7%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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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공주들의 전국~ - [TV프로그램]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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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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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역사 시대극 |
연출 | 이세다 마사야 외 |
각본 | 다부치 구미코 |
출연 | 우에노 주리 미야자와 리에 미즈카와 아사미 도요카와 에쓰시 무카이 오사무 혼나미 스즈키 다이치 야스오 히라 다케히로 아키라 이즈미 모토야 하기와라 마사토 미무라 다케다 신지 사이토 다쿠미 데라다 미노리 스즈키 사와 시바 도시로 구사카리 마사오 도미타 야스코 가가 마리코 나라오카 도모코 기시타니 고로 이치무라 마사치카 오타케 시노부 이시자카 고지 기타오지 긴야 |
내레이션 | 혼나미 스즈키 |
작곡가 | 요시마타 료 |
국가 | 일본 |
언어 | 일본어 |
에피소드 수 | 46 |
총괄 프로듀서 | 요타로 야시키 겐 사쿠라이 |
프로듀서 | 타로 오스기 |
러닝 타임 | 45–73분 |
방송사 | NHK |
최초 방송일 | 2011년 1월 9일 |
마지막 방송일 | 2011년 11월 27일 |
관련 정보 | |
원작 | 다부치 구미코의 『고우 ~공주들의 전국~』 |
2. 작품 내용 및 반향
2009년 6월 17일 제작 발표되었다. 2008년 방영된 아츠히메의 타부치 쿠미코가 각본을, 요시마타 료가 음악을 담당했다.[1] 주인공 고우는 에도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정실로, 언니 차차, 하츠와 함께 전란에 휩쓸리면서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천하태평한 시대를 염원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세 영웅이 모두 등장하며, 고우의 시각에서 새로운 전국시대 역사와 여성사를 그려냈다. 고우 역에는 우에노 주리가 캐스팅되어 대하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으며, 차차 역에는 미야자와 리에, 하츠 역에는 미즈카와 아사미, 세 자매의 어머니 오이치 역은 스즈키 호나미가 맡았다.[8][9]
총 46화의 평균 시청률은 17.7%(간토 지역 조사[10])로, 최근 10년간 방영된 대하드라마 중 무사시 MUSASHI(2003년)의 16.7%, 신센구미!(2004년)의 17.4%에 이어 세 번째로 낮았다.[11]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등장하는 작품 중에서는 유일하게 평균 시청률 20%를 넘지 못했다.[12]
주간신조의 '제1회 신조라즈베리상'에서 '고우~공주들의 전국~'은 최악의 드라마상을, 우에노 주리는 최악의 주연여우상을 받았다.[25]
2. 1. 비판
본 작품은 제13화 시점에서 고우가 만 10~11세로, 과거 작품들에 비해 주인공의 어린 시절이 매우 길었다. 작품 중 설정 연령이 만 6세(제2화 시점)인 고우를 24세인 우에노 주리가 연기하는 등 세 자매의 어린 시절에 아역 배우를 거의 쓰지 않고 20대에서 30대의 여배우가 연기하는 점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13][14][15][16]또한, 코미디 같은 연출이나 대사, 9세인 고우가 혼노지의 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이가(伊賀)를 넘는다든지,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설교를 하는 등 어린 시절의 고우를 역사적 사건에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사실과는 다른 전개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전개는 "시대극인데 '노다메 칸타빌레'로밖에 안 보인다.", "애 같아서 만화틱하다.",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등의 의견을 낳았다.[13][14][15][16]
이에 대해 NHK 측은 "어린 시절을 아역배우가 아니라 우에노 주리가 연기하는 것은 고우의 성장을 시청자가 보고 더 강하게 감정 이입을 해주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떠들어대는 장면이 많은 것은 어린 시절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면 새롭게 전개된다."고 해명했다.[13] 또한 "시대 고증 일변도라면 드라마로서 재미가 없어진다. 어디까지나 픽션이고 판타지니까 즐겁게 봐주셨으면 한다"고 반론했다.[21]
역사 고증을 담당한 오와다 데쓰오는 오다니 성이 화재로 붕괴된 것과 9살의 고우가 이가 고에를 한 것에 대해, "알기 쉬운 연출을 하고 싶다" "고우의 출연 분량이 적다"는 이유로 스태프로부터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오와다는 "(『조금 정도라면』이라고 절충을 보았는데, 상상 이상의 화재 묘사에) 올해 최고의 쇼크였습니다" "학자 동료들에게 '이상하다, 있을 수 없다'고 엄청나게 지적당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22][23][24]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비판이 있었다.
- 고우의 오빠이자 아자이 가문의 적자인 만푸쿠마루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17]
- 오미 국의 교고쿠 다카쓰구에게 시집간 하츠가 성주의 부인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와 같은 교통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오사카나 에도에 사는 자매들을 만나기 위해 쉽게 이동한다.[18]
- 오사카 전투를 피하기 위해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비전(非戰)을 청하는 서신을 보내거나, 가신으로 위장하여 오사카 성에 들어가 히데요리와 요도에게 직접 담판을 벌인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사극과 너무 다르다" "아쓰히메와 같은 각본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19][20]
주간 신조 2011년 12월 29일호에서 미국의 최악 영화상 '골든 라즈베리상'을 본떠 만든 2011년 일본 최악의 드라마를 선정하는 '제1회 신조 라즈베리상'에서, '고우~공주들의 전국~'은 총 투표수(5표) 중 3표를 받아 '남극 대륙'을 누르고 2011년 최악의 드라마상을 받았다.[25] 또한 주연을 맡은 우에노 주리 또한 4표를 받아 최악의 주연여우상을 받게 되었다.[25]
2. 2. 시청률
총 46화의 평균 시청률은 17.7%(간토 지역 · 비데오 리서치사 조사[10])였다. 이는 이전 작품인 료마전보다 낮은 기록이며, 최근 10년간 방영된 대하드라마 중에서는 무사시 MUSASHI(2003년)의 16.7%, 신센구미!(2004년)의 17.4%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수치이다.[11]전국시대 삼대 무장(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이 등장하는 작품 중에서는 유일하게 평균 시청률 20%를 넘지 못했다. 시청률이 20%를 넘은 8회는 모두 초반 회차였으며, 간토 지역에서는 제17화를 마지막으로 20%를 넘지 못했다.[12]
주간신조 2011년 12월 29일자 잡지에서는 2011년 일본 최악의 드라마를 선정하는 '제1회 신조라즈베리상'이 열렸는데, '고우~공주들의 전국~'은 총 득표수 5표 중 3표를 받아 최악의 드라마상을 받았다. 주연 배우 우에노 주리 또한 4표를 받아 최악의 주연여우상을 수상했다.[25]
연도 | 시상식 | 부문 | 후보 | 결과 |
---|---|---|---|---|
2011 | 신초 래지 어워드[6] | 최악의 TV 드라마 | 고우: 공주들의 전국 | 수상 |
최악의 여배우 | 우에노 주리 | 수상 |
2. 3. 기타
오프닝에서 연기자, 스태프 소개가 《아츠히메》 이후 3년 만에 세로쓰기로 표기되었다.[14] 배역에서 '출연' 또한 2년 만에 표시되었다.[14] 아날로그 방송에서 2011년 7월 디지털 전환을 고려하여, 아날로그 방송 종료 시까지 16:9 사이즈로 방송되었는데,[15] 이는 아날로그 방송에서 16:9 사이즈로 방송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이다. (《료마전》의 경우 14:9로 방송)[15]3. 등장인물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의 딸이자 아자이 나가마사의 셋째 딸인 고우는 도쿠가와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정실이다. 고우는 언니 차차, 하츠와 함께 전란 속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를 키우며 성장했다. 고우는 사지 가즈나리와 첫 번째 결혼을 했으나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협력한 남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이혼을 강요받았다. 이후 히데요시의 조카 도요토미 히데카쓰와 두 번째 결혼을 했지만, 히데카쓰는 임진왜란에서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결혼하여 후계자 이에미쓰를 낳았다.
'''등장인물 목록'''
배역 | 역할 |
---|---|
우에노 주리 | 고, 아자이 나가마사의 막내딸이자 이에미쓰의 어머니 |
미야자와 리에 | 차차, 아자이 나가마사의 장녀 |
미즈카와 아사미 | 하츠, 고의 언니 |
시다 마나 | 어린 차차 |
스즈키 호나미 | 오이, 고의 어머니 |
토키토 사부로 | 아자이 나가마사, 고의 아버지 |
테라다 미노리 | 아자이 히사마사, 아자이 나가마사의 아버지, 고의 할아버지 |
유이 마사유키 | 아카오 키요쓰나 |
토요카와 에츠시 | 오다 노부나가, 이치의 오빠, 고의 삼촌 |
타니다 아유미 | 오다 노부타다, 오다 노부나가의 장남 |
야마자키 유타 | 오다 노부카츠, 오다 노부나가의 차남 |
카나이 유타 | 오다 노부타카, 오다 노부나가의 삼남 |
코바야시 타카시 | 오다 노부카네, 고의 삼촌 |
다이치 야스오 | 시바타 가쓰이에 |
와다 케이사쿠, 오이데 슌 | 마에다 도시이에 |
히라 타케히로 | 사지 가즈나리, 세 자매의 사촌 |
다케다 요시하루 | 이케다 쓰네오키 |
야마다 준다이 | 사쿠마 모리마사 |
세토 코지 | 모리 란마루 |
소메타니 쇼타 | 모리 보마루 |
사카모토 쇼고 | 모리 리키마루 |
이치무라 마사치카 | 아케치 미츠히데, 오다 노부나가의 장수 |
미무라 | 호소카와 가라샤, 아케치 미츠히데의 딸 |
가미오 유 | 사이토 토시미츠 |
키시타니 고로 |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
오타케 시노부 | 네네/오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법적 부인 |
나라오카 토모코 | 나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어머니 |
키타무라 유키야 | 도요토미 히데쓰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카이자 가신 |
하카마다 요시히코 | 하시바 히데나가 |
타이가 | 도요토미 히데요리 |
쿠츠나 시오리, 아시다 마나 | 센히메 |
스즈키 사와 | 쿄고쿠 타츠코 |
하기와라 마사토 | 이시다 미쓰나리 |
시바 토시오 | 구로다 간베에 |
다케다 신지 | 오노 하루나가 |
키타오지 킨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아버지 |
무카이 오사무 | 도쿠가와 히데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셋째 아들 |
아사노 카요 | 쓰키야마 도노 |
키무라 쇼고 | 도쿠가와 노부야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남 |
토미타 야스코 | 후쿠 |
키노사키 나오토 | 타케치요 |
이마가와 토모유키 | 구니마쓰 |
코바야시 카이토 | 호시나 코마쓰 |
카미시라이시 모네 | 마사 |
쿠사카리 마사오 | 혼다 마사노부 |
카리야 슌스케 | 혼다 타다카츠 |
사쿠라기 켄이치 | 사카이 타다츠구 |
이즈미 모토야 | 아시카가 요시아키, 아시카가 막부 제15대 쇼군 |
나카야마 진 | 아사쿠라 요시카게 |
이시자카 코지 | 센노 리큐, 유명한 다도가 |
하마다 마나부 | 사나다 유키무라 |
후지나미 타츠미 | 사나다 마사유키 |
사이토 타쿠미 | 쿄고쿠 타카츠구 |
하마다 아키라 | 모리 테루모토 |
시미즈 코지 | 호조 우지마사 |
히사마츠 노부요시 | 다케다 가쓰요리 |
3. 1. 주인공 및 아자이 가문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이자 아자이 세 자매의 어머니인 오이치(お市|いち일본어)는 스즈키 호나미가 연기했다.[27] 오이치는 고결한 성격으로, 여성임에도 무장을 상대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과감함을 지녔다. 오빠 노부나가의 명으로 아자이 나가마사에게 시집갔지만, 점차 그의 인품에 끌려 오다 가문과 아자이 가문이 대립하게 되었을 때 아자이 가문에 협력했다. 아자이 가문 멸망 후에는 세 딸과 함께 노부나가의 곁으로 돌아갔으며,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죽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항하기 위해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했다. 가쓰이에와 부부로서 관계를 구축했지만, 히데요시와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자결했다.도키토 사부로가 연기한 아자이 나가마사(あざい ながまさ)는 세 자매의 아버지이자 오미국 오다니성에 거처를 둔 전국 다이묘였다. 성격은 온후하며 민중을 배려하는 면모를 지녔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를 정실 부인으로 맞이하여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나, 노부나가가 아자이 가문의 맹우인 아사쿠라 가문을 침공하자 의리에 따라 아사쿠라 가문에 협력하기로 결정하고 노부나가와 적대했다. 이후 오다 군의 공격 속에서 오이치와 세 딸을 성에서 탈출시키고 자결했다.
아자이 히사마사(あざい ひさまさ)는 데라다 미노리가 연기했으며, 전대 아자이 가문 당주이자 나가마사의 아버지였다. 가독을 물려준 후에도 발언력이 건재했으며, 오다 가문과의 동맹에 반대하고 노부나가를 적대시했다. 오다니성이 함락될 때 나가마사보다 먼저 자결했다.
아카오 기요쓰나(あかお き요つ나)는 유이 마사유키가 연기한 아자이 가문의 가신이다. 오이치의 가마 도착을 나가마사에게 보고한다.
오이치의 유모 스마는 사지 에미가 연기했다. 이치가 아자이 나가마사에게 시집갈 때 함께 오다니 성으로 들어갔으며, 평생 이치 밑에서 섬기며 기타노쇼 성에서 이치가 자결할 때 운명을 함께 했다.
고의 유모 민부경국(미부쿄노쓰보네)은 미야지 마사코가 연기했다. 이름은 요시이며, 고에게 휘둘리는 일이 많았다. 고의 남편 히데타다의 장군직 취임을 계기로 에도 성의 안쪽 관리를 물려받아 민부경국이라 칭했다.
요도의 유모 대장경국(오오쿠라쿄노쓰보네)은 이사야마 히로코가 연기했다. 이름은 사키이며, 오노 하루나가의 어머니이다.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요도와 히데요리보다 먼저 자결했다.
하츠의 유모 우메는 이즈미 치누가 연기했다. 요시와 사키와 사이가 좋았으며, 교고쿠 다카쓰구가 사망하고 하츠가 출가하자 함께 출가했다.
3. 1. 1. 아자이 세 자매
- '''고(ごう)'''
江|고일본어
: 배역: 우에노 주리
: 주인공.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의 셋째 딸이다. 천진난만하고 호기심 많은 성격으로, 궁금한 것은 납득할 때까지 파고드는 행동력을 지녔다. 한 번 결정한 일은 꼭 관철하는 완고한 면도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을 받는 오다니 성에서 태어나, "희망의 아이"라는 의미와 태어난 곳 오미에서 한 글자를 따 "고"라고 이름 지어졌다.
: 오다니 성 함락 후 어머니, 언니들과 함께 도망쳐 오다 노부타카의 거성 이세에서 자랐다. 처음에는 노부나가를 아버지의 원수로 모르고 동경했지만, 원수임을 알고 나서도 인간성에 매료된다.
: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죽자, 오이치의 재혼 상대 시바타 가쓰이에의 영지 에치젠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가쓰이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배하고, 고는 의붓아버지와 어머니를 잃는다. 오이치는 고에게 오다 가문의 자존심을 지키라는 유언과 함께 노부나가의 "천하포무" 인판을 남겼다.
: 이후 히데요시의 보호를 받지만, 가족을 두 번이나 앗아간 히데요시를 증오하며 "원숭이"라고 불렀다. 언니 차차가 히데요시에게 호감을 갖자, 고는 차차를 지키기 위해 사지 가즈나리와 결혼한다. 그러나 고마키·나가쿠테 전투 후 이혼당하고, 히데요시의 양녀가 된다. 차차가 히데요시의 마음을 받아들이자 분노하여 거리를 두지만, 기타노만도코로와 대화 후 화해한다. 고는 히데요시의 조카 도요토미 히데카쓰와 결혼하여 장녀 완을 낳지만, 히데카쓰는 임진왜란에서 병사한다.
: 히데요시의 명으로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세 번째 결혼을 하지만,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히데타다 역시 고를 어려워했지만, 도쿠가와 저택 화재를 계기로 마음을 열게 된다.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노리자 히데타다와 에도로 가지만, 오오토메노츠보네와 주변의 기대로 후계자 남자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이혼을 신청하기도 했다.
: 다케치요를 낳지만, 유모 후쿠와 대립하고, 도쿠가와·도요토미 양가의 관계 악화에 가슴 아파한다. 히데타다와 전쟁을 피하려 노력했지만,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언니 요도와 조카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잃는다. 도쿠가와 가문의 후계자 문제로 차남 구니마쓰를 지지하며 후쿠와 대립하지만, 다케치요의 본질을 깨닫고 화해한다. 이후 쇼군 고다이도코로로서 히데타다를 돕고, 오오쿠 제도의 기초를 다지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 '''요도(淀殿)'''
淀|요도일본어
: (차차 → 요도)
: 배역: 미야자와 리에 (어린 시절: 아시다 마나[26])
: 아자이 나가마사·오이치의 장녀. 이름은 '''차차'''(茶々). 고와 하쓰에게 "언니"라고 불린다. 과묵하고 사려 깊지만, 격렬한 기질을 숨기고 있어 가끔 드러낸다. 아버지의 원수 노부나가를 좋게 보지 않는다. 기타노쇼 함락 시, 오이치에게서 나가마사의 유품인 회칼을 받고 아사이 가문의 자존심을 지키라는 유언을 들었다.
: 히데요시의 보호 아래, 어머니 역할을 하며 동생들을 지키려 한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미모로 히데요시의 호감을 사지만, 처음에는 부모의 원수라 혐오했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구애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다.
: 장남 쓰루마루 출산 시 히데요시에게 요도 성을 받아 성주가 되고, 기타노만도코로 다음가는 정실 대우를 받으며 "요도도노", "요도의 분"으로 불렸다.
: 히데요시 사후, 이에야스를 불신하면서도 기타노만도코로의 말과 매제 히데타다를 믿고 침묵했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히데타다에게 쇼군 직을 물려주자, 천하를 되찾기로 결심한다. 여동생들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이에야스의 도발에 넘어가 오사카 여름 전투를 일으킨다. 도요토미 가문 패배 후, 하쓰와 센을 통해 히데요리의 목숨을 구걸하지만, 히데타다의 단호함에 좌절하고 히데요리와 자결했다.
- '''조코인(常高院)'''
常高院|조코인일본어
: (하쓰 → 조코인)
: 배역: 미즈카와 아사미 (어린 시절: 오쿠다 이로하)
: 아자이 나가마사·오이치의 둘째 딸. 이름은 '''하쓰'''(初). 고에게 "언니"라고 불린다. 음식, 특히 만주 같은 과자를 좋아한다. 언니처럼 아버지의 원수 노부나가를 좋게 보지 않고, 노부나가를 동경하는 고와 자주 다퉜다. 기타노쇼 함락 시 오이치에게서 모토유이를 받고, 자매의 유대를 강화하라는 유언을 들었다.
: 어머니 오이치 사후, 자매들과 히데요시의 보호를 받았다. 처음에는 히데요시를 증오했지만, 현실을 파악하고 저항을 멈췄다. 사촌 교고쿠 다카쓰구를 짝사랑했지만, 다카쓰구의 평판과 자신의 처지 때문에 고민했다. 그러나 언니 차차의 탄원과 다카쓰구의 호감으로 결혼에 성공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다카쓰구와 오쓰 성에서 서군과 싸웠다.
: 남편 사후 출가하여 '''조코인'''(常高院)이라 불리며, 언니 요도 곁에서 도요토미·도쿠가와 양가의 가교 역할을 하려 했지만, 오사카 전투를 막지 못했다. 요도와 히데요리를 잃고 도요토미 가문이 멸망한 후 에도로 간다. 고와 다케치요의 관계를 걱정하며, 구니마쓰를 후계자로 생각하는 고에게 "공평하게 자식을 대하고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3. 1. 2. 아자이 가(家)
: 주인공.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의 셋째 딸이다.
: (차차 → 요도)
: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의 장녀. 이름은 차차.
- 하츠 - 미즈카와 아사미 (어릴 적 배역 : 오쿠다 이로하)
: (하츠 → 죠코인)
: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의 둘째 딸.
- 이치 - 스즈키 호나미
: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아자이 세 자매의 어머니.
- 아자이 나가마사 - 도키토 사부로
: 세 자매의 아버지. 오우미 국 오타니 성 성주.
- 아자이 히사마사 - 데라다 미노리
: 옛 아자이 가문의 당주. 아자이 나가마사의 아버지.
- 아카오 기요쓰나 - 유이 마사유키
: 아자이 가 가신.
- 스마 - 히다리 토키에
: 오이치의 유모.
- 민부쿄노 츠보네 - 미야지 마사코
: 고우의 유모. 이름은 요시.
- 오오쿠라쿄노 츠보네 - 이사야마 히로코
: 요도(차차)의 유모. 이름은 사키. 오오노 하루나가의 어머니.
- 우메 - 이즈미 치누
: 하츠의 유모.
3. 1. 3. 시녀
- 오이치의 유모: 스마 - 히다리 토키에[1]
- 고우의 유모: 민부쿄노 츠보네 - 미야지 마사코[1] (이름은 요시)[1]
- 요도(챠챠)의 유모: 오오쿠라쿄노 츠보네 - 이사야마 히로코[1] (이름은 사키, 오오노 하루나가의 어머니)[1]
- 하츠의 유모: 우메 - 이즈미 치누[1]
- 키타노쇼 성의 마구간 지기: 요스케 - 오오타케 코이치[1]
3. 2. 오다 가(家)
오다 가문은 일본 전국 시대의 유력한 다이묘 가문 중 하나였다. 오다 노부나가를 중심으로, 그의 가신들과 친족들이 일본 통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케치 미쓰히데''' (이치무라 마사치카 분): 오다 가의 신하. 원래는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가신이었다. 통칭은 휴가노카미(日向守) 또는 고레토 휴가노카미(惟任日向守)로 불린다. 온화하고 보수적인 성격으로, 노부나가의 급진적인 정책에 반발하여 혼노지의 변을 일으켰다.
- '''사이토 도시미쓰''' (카미오 유우 분): 아케치 가의 중신. 통칭은 구라노스케(蔵人佐)이다. 오후쿠의 친아버지이다. 혼노지의 변 이후 미쓰히데에게 큰 기대를 걸었으나,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패배하고 자결하자 그의 가이샤쿠를 맡았다.
- '''모리 란마루''' (세토 코지 분): 오다 노부나가의 시동(小姓). 미모가 뛰어나 노부나가의 측근으로 모셨다. 혼노지의 변에서 아케치 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 '''모리 보마루''' (소메타니 쇼타 분): 노부나가의 시동. 모리 란마루의 동생. 형제 모두 미모가 우수했다. 하츠는 그의 외모에 첫눈에 반했다. 혼노지의 변에서 노부나가를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
- '''모리 리키마루''' (사카모토 쇼고 분): 노부나가의 시동. 란마루, 보마루의 동생. 혼노지의 변에서 노부나가의 명으로 시녀들을 대피시키다 전사했다.
- '''사지 가즈나리''' (히라 타케히로 분): 오다 노부카쓰의 가신으로 오와리국 오노 성 성주. 고우의 첫 번째 남편. 고마키·나가쿠테 전투 후, 도쿠가와 군을 수군으로 호송하지만, 히데요시에게 책잡혀 개역 처분을 받게 되어 고우와 이혼하게 되었다.
- '''니와 나가히데''' (에즈레 켄지 분): 오다 가의 중신. 기요스 회의에서 히데요시가 산포시를 옹립하자 태도를 바꿔 이를 승낙했다.
- '''이케다 쓰네오키''' (타케다 요시하루 분): 오다 가의 중신. 기요스 회의에 참가하여, 히데요시가 옹립하는 산포시에 찬성표를 던졌다.
- '''삿사 나리마사''' (나카하라 유우야 분): 오다 가의 가신. 노부나가의 사후에는 히데요시와 대립했지만, 히데요시의 부하가 된 도시이에 등과 교전하여 패배했다.
- '''호소카와 다다오키''' (우치쿠라 켄지 분): 오다 가, 후에 도요토미 가의 가신. 아케치 미쓰히데의 사위. 센노 리큐의 제자이기도 하다.
- '''호소카와 유사이''' (오다 유타카 분): 오다 가의 가신. 단고국 미야즈성 성주. 타다오키의 아버지.
- '''호소카와 가라샤''' (미무라 분):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정실. 아케치 미쓰히데의 딸.
- '''기요하라 마리아''' (요시다 요 분): 가라샤의 시녀.
이 외에도 시바타 가쓰이에 (다이치 야스오), 마에다 도시이에 (와다 케이사쿠, 노년의 오이데 슌), 사쿠마 모리마사 (야마다 준다이) 등 여러 인물들이 오다 가와 관련된 인물로 등장한다.
3. 2. 1. 오다 일족
도요카와 에츠시가 연기한 오다 노부나가는 이치의 오빠이자 고의 숙부이다. 미노 기후성을 거점으로 하고, 이후에는 오미 아즈치성을 거점으로 삼은 전국 다이묘였다. 그는 혁신적인 사상을 가졌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워했다.[1]노부나가는 나가마사에게 여동생 이치를 시집보냈지만, 이치가 나가마사를 사랑하게 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게다가 아사이 가가 오다가를 배신하고 아사쿠라 가에 붙으면서, 노부나가는 아사이 가를 멸망시켰다. 이로 인해 이치와 노부나가 사이에 앙금이 생겼고, 이치의 딸들인 차차와 하츠도 노부나가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자신을 아버지의 원수로 여기면서도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는 고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고에게 "자신을 믿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라"라는 말을 남겼고, 이는 고가 살아가는 지침이 되었다.[1]
노부나가는 "천하포무"를 기치로 내걸고 반항하는 세력을 가혹하게 멸망시켰지만, 그의 진의는 "태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두려움과 미움을 받는 역할을 스스로 짊어진다"는 것이었다. 미츠히데는 노부나가가 "스스로 껍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고,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에게 내심 기대하며 여러 차례 가혹하게 대했지만, 미츠히데에게 그 마음이 전달되지 못하고 혼노지의 변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노부나가가 애용하던 "천하포무" 인판은 이치의 손을 거쳐 고에게 전해졌다.[1]
코바야시 타카시가 연기한 오다 노부카네는 노부나가의 동생이자 이치의 오빠이며, 고의 숙부이다. 이세 우에노성, 이후 쓰성의 성주였으며, 형 노부나가와는 달리 온화한 성격이었다.[1]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오다니성을 탈출한 이치와 고 등 세 자매를 보호했다. 고 등에게는 가장 가까운 숙부였으며, 후에 고와 이혼한 사지 카즈나리를 맞이한다.[1]
야다 아유무가 연기한 오다 노부타다는 노부나가의 적자이며, 고 등 세 자매의 사촌이다. 동생들과 함께 고 등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온후한 성격이었다.[1] 노부나가로부터 가독을 물려받아 고슈 정벌 등에서 공적을 올렸지만, 혼노지의 변에서 노부나가와 함께 요절했다.[1]
야마자키 유타가 연기한 오다 노부오는 노부나가의 차남으로, 자존심은 높지만 경솔한 인물이었다.[1] 노부나가 사후 오와리 기요스성의 성주가 되었지만, 기요스 회의에서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지명받지 못하고 이에야스에게 접근했다. 히데요시의 천하 찬탈에 대한 초조함으로 이에야스에게 히데요시와의 결전을 촉구했고,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는 도쿠가와 세력의 활약으로 우세를 점했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회유책에 넘어가 화해를 맺어 이에야스 등을 실망시켰다.[1] 후에 딸이 히데요시의 양녀가 되어 히데타다와 약혼한다.[1]
카나이 유타가 연기한 오다 노부타카는 노부나가의 삼남으로, 형 노부타다·노부오와는 이복 형제였다.[1] 형들에 이어 오다 일문의 중진이었다. 아버지 노부나가 사후 히데요시와 협력하여 미츠히데를 쳤다. 기요스 회의에서는 카츠이에의 추대로 오다 가의 가독을 목표했지만, 히데요시가 옹립한 산포시의 등장으로 좌절되었다. 회의 후 기후성에 들어가 산포시를 후견했지만, 히데요시의 압력에 굴복하여 산포시를 빼앗겼다. 카츠이에와 동맹하여 히데요시에 대항했지만, 카츠이에가 패사하면서 고립되었고, 히데요시의 사주를 받은 노부오의 협박에 의해 자결했다.[1]
니시무라 료카이(유아기: 쇼지 류세이)가 연기한 산포시는 노부타다의 유아이며, 노부나가의 적손이다.[1] 기요스 회의에서 3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다 가의 적통이라는 명목으로 히데요시에 의해 옹립되어, 니와 나가히데·이케다 츠네오키의 찬성을 받아 오다 가의 가독을 이었다. 숙부 노부타카의 후견을 받아 기후성에 있었지만, 히데요시의 압력을 받아 그의 보호 하에 놓였다. 히데요시에게 회유되어 있으며, 히데요시의 어머니 나카와 우연히 만난 종숙모 고에게 잘 따랐다. 히데요시에 의해 정체를 숨겨 "호시님"이라고 불렸다.[1]
그 외 오다 일족으로 다음 인물들이 등장한다.
배역 | 역할 |
---|---|
이치무라 마사치카 | 아케치 미쓰히데 - 오다가의 신하. |
카미오 유우 | 사이토 도시미쓰 - 아케치가 중신. |
세토 코지 | 모리 란마루 - 노부나가의 시동. |
소메타니 쇼타 | 모리 나가타카 - 노부나가의 시동. |
사카모토 쇼고 | 모리 나가우지 - 노부나가의 시동. |
히라 타케히로 | 사지 카즈나리 - 오다 노부카츠의 가신. |
에즈레 켄지 | 니와 나가히데 - 오다가 중신. |
타케다 요시하루 | 이케다 츠네오키 - 오다가 중신. |
나카하라 유우야 | 삿사 나리마사 - 오다가 가신 |
미무라 | 호소카와 가라샤 -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정실. |
요시다 요 | 기요하라 마리아 - 가라샤의 시녀. |
우치쿠라 켄지 | 호소카와 다다오키 - 오다가, 후에 도요토미 가의 가신. |
나카가와 타이시 | 호소카와 다다토시 - 타다오키와 가라샤의 3남. |
오다 유타카 | 호소카와 유사이 - 오다가의 가신. |
3. 2. 2. 시바타 가(家) 가쓰이에 파(派)
다이치 야스오가 연기한 시바타 가쓰이에는 오다 가문의 으뜸가는 가로였다. 통칭은 수리료이며, '''"오니시바타(鬼柴田, 귀신 시바타)"'''라고 불리는 맹장이었지만, 자수를 특기로 하는 의외의 면도 있었다.[1] 노부나가 정권 하에서 호쿠리쿠 방면군을 담당하여 에치젠 호쿠쇼 성을 다스렸다.[1]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사망했을 때, 히데요시에게 뒤처져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추대했던 노부타카를 히데요시에게 내쫓기고 오다 가문 내에서 발언권을 빼앗기게 된다.[1] 히데요시의 오다 가문 찬탈을 우려한 이치를 아내로 맞이하여 히데요시에게 대항한다.[1]결혼 초에는 주군에 해당하는 이치와 세 자매에게 낮은 자세로 대하며, 나가마사를 그리워하는 차차와 하츠에게서도 거리를 두었다.[1] 그러나 이치의 부탁과 고의 행방불명 소동을 거치면서 가족으로서의 관계를 쌓아 1년여간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1] 하지만 히데요시와의 싸움에서 아군과의 연계 불일치와 폭설에 막혀 뒤처지게 되고, 노부타카와 연합하여 임한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완패하여 거성으로 돌아가 이치와 함께 자결했다.[1]
야마다 쥰다이가 연기한 사쿠마 모리마사는 노부나가 사후 시바타 군에 소속되어 가쓰이에를 "전하"라고 불렀다.[1] 시바타 가문의 중신격으로 히데요시와의 관계가 긴장되는 가운데 재삼 가쓰이에에게 출진을 진언했다.[1] 시즈가타케 전투에서는 노부타카 토벌에 출진한 히데요시의 허를 찌르도록 가쓰이에에게 진언하고, 얕은 추격을 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하시바 군을 격파했지만, 흥분하여 장진한 틈을 타서 대반격을 감행한 하시바 군의 기습을 받아 패주했다.[1]
오타케 코이치가 연기한 요스케는 호쿠쇼 성의 마구간지기였다.[1] 가쓰이에와의 관계에 고민하는 고가 기분 전환으로 말타기를 하려고 했을 때 무단으로 뛰쳐나가는 고를 제지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1] 고가 그대로 행방불명되었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처형될 예정이었지만, 고가 귀환했기 때문에 용서받았다.[1]
3. 2. 3. 아케치 가(家)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는 통칭 휴가노카미 또는 고레토 휴가노카미로 불린다. 이치무라 마사치카가 연기했다. 미츠히데는 원래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가신이었다. 온화하고 보수적인 사상을 가진 그는 노부나가의 급진적인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점차 반감을 느껴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노부나가를 멸망시킨다. 하지만 모리 란마루에게서 노부나가의 진의를 알고 고우에게 태평성대를 약속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배하여 자결한다.[1]사이토 토시미츠는 아케치 가문의 가로로, 통칭 구라노스케라고 불린다. 가미오 유가 연기했다. 미쓰히데의 측근으로 혼노지의 변 이후 미쓰히데에게 큰 기대를 걸었으나, 미쓰히데가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패배하고 자결하자 그의 가이샤쿠를 맡았다. 이후 하시바 군에게 붙잡혀 십자가형에 처해졌다.[1]
호소카와 가라샤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딸로,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정실이다. 미무라가 연기했다.
'''아케치 가문 관련 인물'''
이름 | 배우 | 설명 |
---|---|---|
아케치 미츠히데 | 이치무라 마사치카 | 오다 가의 신하. 원래는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가신. 통칭 휴가노카미 또는 고레토 휴가노카미. |
사이토 토시미츠 | 가미오 유 | 아케치 가 중신. 통칭 구라노스케. 오후쿠의 친아버지. |
호소카와 가라샤 | 미무라 |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정실. 아케치 미쓰히데의 딸. |
3. 2. 4. 모리 가(家) 형제
오다 노부나가의 시동(고쇼)이자 모리 요시나리의 아들들이다.- 모리 란마루 (세토 코지 분): 노부나가의 측근으로, 뛰어난 미모를 지녔다. 아케치 미쓰히데의 불만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으나, 혼노지의 변에서 아케치 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 모리 보마루 (소메타니 쇼타 분): 란마루의 동생으로, 역시 미모가 뛰어나 아자이 가문의 하츠에게 첫눈에 반해졌다. 아즈치성에서 고우 일행을 접대했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노부나가를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
- 모리 리키마루 (사카모토 쇼고 분): 란마루, 보마루의 동생으로, 고우와 친하게 지냈다. 혼노지의 변에서 노부나가의 명으로 시녀들을 대피시키다 전사했다.
3. 2. 5. 그 외 오다 가신
: 오다 가의 신하. 원래는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가신이었다. 통칭은 휴가노카미(日向守) 또는 고레토 휴가노카미(惟任日向守)로 불린다.
- 사이토 도시미츠 (카미오 유우)
: 아케치 가의 중신. 통칭은 구라노스케(蔵人佐)이다. 오후쿠의 친아버지이다.
- 모리 란마루 (세토 코지)
: 오다 노부나가의 시동(小姓). 미모가 뛰어나 노부나가의 측근으로 모셨다.
- 모리 보우마루 (소메타니 쇼타)
: 노부나가의 시동. 모리 란마루의 동생. 형제 모두 미모가 우수했다. 그 외모에 하츠는 첫눈에 반했다.
- 모리 리키마루 (사카모토 쇼고)
: 노부나가의 시동. 란마루ㆍ보우마루의 동생.
: 오다 노부카쓰의 가신으로 오와리국 오노 성 성주. 생모는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누이며, 고우 자매들과는 사촌 관계이다. 고우의 첫 번째 남편. 이세만 일대에 영향력을 가진 수군 장수였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존재를 경계하여 회유책으로 고우와의 혼인을 제안했고, 오다 일족의 결속을 도모하기 위해 이를 승낙한다. 고마키·나가쿠테 전투 후, 미카와국으로 철수하는 도쿠가와 군을 수군으로 호송하지만, 히데요시에게 책잡혀 개역 처분을 받게 되어 고우와 이혼하게 되었다. 그 후 인접국인 오다 노부카네가 다스리는 이세국 쓰성으로 도망쳤다. 고우와의 결혼 생활은 매우 짧았고, 부부의 연을 맺기 직전에 헤어졌지만,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 에도로 향했을 때 고우와 재회한다.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숨겨진 아이인 고마츠 때문에 고민하는 고우에게 "마음 가는 대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권했다.
- 니와 나가히데 (에즈레 켄지)
: 오다 가의 중신. 교토의 말 갖춤에서는 선두의 군을 이끄는 등, 노부나가 생전부터의 중신이었다. 기요스 회의에서 히데요시나 시바타 가쓰이에 등과 오다 가문의 후계자에 대해 논의한다. 당초에는 가쓰이에가 지지하는 오다 노부타카 안건에 동조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지만, 히데요시가 산포시를 옹립하자 태도를 바꿔 이를 승낙했다.
- 이케다 쓰네오키 (타케다 요시하루)
: 오다 가의 중신. 기요스 회의에 참가하여, 히데요시가 옹립하는 산포시에 찬성표를 던졌다.
- 삿사 나리마사 (나카하라 유우야)
: 오다 가의 가신. 효코의 외조부. 기후 시대부터의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이치가 아자이씨에게 시집갈 때 마에다 도시이에 등과 함께 그 경호와 전송의 임무를 맡았다. 노부나가의 사후에는 히데요시와 대립하지만, 히데요시의 부하가 된 도시이에 등과 교전하여 패배했다.
: (아케치 타마 → 호소카와 타마 → 호소카와 가라샤)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정실. 아케치 미쓰히데의 딸. 이름은 타마.
- 키요하라 마리아 (요시다 요)
: (키요하라 이토 → 키요하라 마리아) 가라샤의 시녀. 이름은 이토.
- 호소카와 다다오키 (우치쿠라 켄지)
: 오다 가, 후에 도요토미 가의 가신. 아내는 아케치 미츠히데의 딸·타마로서 미쓰히데의 사위에 해당한다. 센노 리큐의 제자이기도 하다.
: 타다오키와 가라샤의 3남.
- 호소카와 유사이 (오다 유타카)
: 오다 가의 가신. 단고국 미야즈성 성주. 타다오키의 아버지. 이름은 후지타카.
3. 3. 도요토미 가(家)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이후 키노시타 토키치로 히데요시, 하시바 히데요시를 거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로 이름을 바꿨다. 통칭 토키치로, 이후 지쿠젠노카미로 불렸으며, 어릴 적 이름은 히요시였다.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자주 불렸으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능숙했지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기도 했다.[8] 히데요시는 아자이 가문을 멸망시키고, 가쓰이에를 격파하여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간파쿠 지위에 오르고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 성을 받아 천하인이 되었다.[8]오오타케 시노부가 연기한 고다이인은 히데요시의 정실로, 이름은 오네였다. 히데요시의 간파쿠 취임 후에는 키타노만도코로로 불렸으며, 히데요시 사후에는 고다이인으로 불렸다.[8] 나라오카 토모코가 연기한 오만도코로는 히데요시의 어머니로, 이름은 나카였다.[8]
키타무라 유키야가 연기한 도요토미 히데츠구는 히데요시의 누나 토모의 장남이자 히데요시의 조카였다.[8] AKIRA가 연기한 도요토미 히데카쓰는 히데요시 누나 토모의 차남이자 히데요시의 조카이자 양자였다. 고우의 두 번째 남편이기도 했다.[8] 하카마다 요시히코가 연기한 도요토미 히데나가는 히데요시의 동생이었다.[8]
타이가가 연기한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히데요시와 요도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으로, 아명은 히로이였다.[8] 히로오카 유리코가 연기한 아사히는 히데요시의 여동생이었다.[8] 야마모토 마이카가 연기한 사다는 고우와 도요토미 히데카츠의 장녀였다.[8] 아사와 사토미가 연기한 토모는 히데요시의 누나이자 히데츠구와 히데카츠의 어머니였다.[8]
사이토 유우가 연기한 하시바 히데이에는 히데요시의 양자였다.[28] 사이토 쥬스케가 연기한 하시바 히데카츠는 히데요시의 양자로 오다 노부나가의 4남이었다. 아명은 오츠기마루였다.[8] 오오타키 리오가 연기한 츠루마츠는 히데요시와 요도 사이에서 태어난 적남이었다.[8] 미타니 쇼타가 연기한 도요토미 쿠니마츠는 히데요리의 장남이었다.[8]
스즈키 사와가 연기한 쿄고쿠 타츠코는 히데요시의 첩이었다. 아자이 나가마사의 누나 쿄고쿠 마리아의 딸이자, 아자이 세 자매의 외사촌이었다.[11] 사이토 타쿠미가 연기한 쿄고쿠 타카츠구는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이자 타츠코의 동생이며, 아자이 세 자매의 외사촌이었다.[11]
하기와라 마사토가 연기한 이시다 미츠나리는 히데요시의 가신이자 오봉행 중 한 명이었다.[1] 나카무라 이쿠지가 연기한 시마 사콘은 미츠나리의 측근이었다.[1] 시바 토시오가 연기한 구로다 간베에는 히데요시의 군사였다.[18] 하세가와 키미히코가 연기한 구로다 나가마사는 간베에의 아들이자 도요토미 가문의 무장이었다.[19]
후지나미 타츠미가 연기한 사나다 마사유키는 도요토미 산하의 다이묘였다.[1] 하나다 마나부가 연기한 사나다 유키무라는 사나다 마사유키의 차남이었다.[2] 다케다 신지가 연기한 오노 하루나가는 도요토미 가신이었다.[1] 미타무라 쿠니히코가 연기한 가타기리 가쓰모토는 도요토미 가문의 중신이었다.[1]
오이데 슌과 와다 케이사쿠가 연기한 마에다 도시이에는 원래 오다 가문의 가신이었으나, 후에 도요토미 가문 산하에 들어갔다.[1] 후루사와 이와오가 연기한 후루타 오리베는 히데요시의 가신이자 센노 리큐의 다도 제자였다.[1] 카나야마 카즈히코가 연기한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요코야마 카즈토시가 연기한 가토 기요마사는 도요토미 가문의 무장이었다.[1]
하마다 아키라가 연기한 모리 데루모토는 도요토미 산하의 다이묘이자 오대로 중 한 명이었다.[1] 스미다 타카시가 연기한 소에다 진베에는 아사히의 남편이었다.[1] 키무라 사카에가 연기한 고토 마타베는 도요토미 가문의 무장이었다.[1]
야마구치 카린이 연기한 코조스는 코다이인의 필두 시녀였던 비구니였다.[1] 야마노우치 메이비가 연기한 토요는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첩이었다.
3. 3. 1. 도요토미 일족
; 키시타니 고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오오타케 시노부 (네네/오네)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법적 부인
; 나라오카 토모코 (나카)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어머니
; 키타무라 유키야 (도요토미 히데쓰구)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카이자 가신
; 하카마다 요시히코 (하시바 히데나가) - 도요토미 히데나가
; 타이가 (도요토미 히데요리)
; 쿠츠나 시오리 (센히메)
- * 아시다 마나 - 어린 센히메
; 스즈키 사와 (쿄고쿠 타츠코)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
: (기노시타 토키치로 히데요시 → 하시바 히데요시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배역: 키시타니 고로
: 통칭은 '''토키치로'''(藤吉郎, 도키치로), 이후 치쿠젠노카미(筑前守). 어린 시절 이름은 히요시(日吉). 원숭이(猿, 사루)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경우도 많다. "사람을 다루는 자(人たらし, 히토타라시)" 등으로 불리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잘하는 한편,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다.
: 원래는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기노시타'''(木下, 기노시타) 성을 사용했다. 이치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지만,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그녀가 있는 오다니 성을 공격하여 아자이 가문을 멸망시킨다. 그 후, 성을 '''하시바'''(羽柴, 하시바)로 바꾸고, 노부나가의 중국 공략의 대장이 되었다.
: 혼노지의 변을 알게 되자, 재빨리 전장에서 돌아와 미츠히데를 쳐 물리치고, 다음으로 오다 가문의 가독을 놓고 대립한 카츠이에를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격파하여, 오다 가문 내의 실권을 장악한다. 그러나 아자이 가문을 멸망시키고, 더 나아가 카츠이에를 멸망시킨 것으로, 삼자매의 원수가 된다.
: 그 후, 노부나가의 관계자들을 따르게 하고, 이에야스를 비롯한 여러 다이묘들을 평정한다. 또한 관직에서도 관백의 지위에까지 올라,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豊臣)의 성을 하사받아, 명실상부한 천하인이 되었다. 또한 이치와 모습이 닮아진 차차에게 호감을 느껴, 이치의 유언과 고의 편지를 무시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접근하여, 마침내 아내로 삼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 츠루마츠의 죽음을 계기로 무모한 조선 출병을 감행하고, 또한 센노 리큐나 히데츠구 일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등 잔혹한 행동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 고(江, 한국어: 고)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그녀에게 노부나가의 모습을 보고, 공포를 느끼는 일이 자주 있었다. 또한 부모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여러 번 그녀로부터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아 온 경위도 있어서 깊이 미움을 받고 있었으며, 히데츠구 일문의 처형을 계기로 절교를 통보받는다.
: 최후에는 병으로 쓰러져, 이에야스 등에게 아들 히데요리의 뒷일을 맡기고, 문병을 온 고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사과하며, "도쿠가와 가문에서 행복하게 지내라"라고 유언을 남겼다.
: 이치(스즈키 호나미)의 말에 따르면, 이치와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 외에는 유일하게 경칭을 붙이지 않고 불렸다.
; 고다이인(高台院)(고다이인)
: (오네 → 키타노만도코로 → 고다이인)
: 배역: 오오타케 시노부
: 히데요시의 정실. 이름은 '''오네'''. 히데요시가 관백에 취임한 후에는 기타노만도코로라고 칭해진다.
: 히데요시가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지만, 남편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다. 아자이 삼자매를 "이치로부터 맡았다"라며 정중하게 대하며, 차차에게 마음을 두는 히데요시를 견제하지만, 결국 히데요시에게 차차를 포기하게 할 수는 없었다. 차차가 히데요시의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도요토미 가문의 여성으로서, 차차에게 훈계의 말을 건넸다.
: 히데요시의 사후에는 삭발하고 '''고다이인'''이라고 칭한다. 이에야스에게 의심을 품는 요도에게 "믿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히데타다가 쇼군에 취임했을 때, 히데요리에게 축하 방문을 하도록 권유해 달라는 이에야스의 부탁을 받지만, 요도에게 거절당한다. 오사카 여름의 진 때에는, 히데타다에게 정전하도록 요도를 설득해 달라는 의뢰를 받지만, 요도의 성격상 불가능하다며 거절하고, "이 세상을 태평하게 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 도요토미 가문 멸망 후에는, 거처하는 고다이 사에서 죽을 때까지 료시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 오만도코로(大政所)(오만도코로)
: (나카 → 오만도코로)
: 배역: 나라오카 토모코
: 히데요시의 어머니. 이름은 '''나카'''. 아들들을 어릴 적 이름으로 부른다.
: 천하 통일을 목표로 하는 히데요시에게 부탁받아 오사카 성에 들어가지만, 성에 들어가서도 뜰에서 밭일을 하고 있다. 히데요시가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며 "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발언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식들을 생각하는 발언도 많다. 이에야스를 뜻대로 하지 못해 고심하는 히데요시에게 아사히에 이어 자신이 인질이 되겠다고 자청하여 이에야스에게 향하고, 그를 결국 설득시켰다. 조선 출병 중에 병으로 쓰러져, 문병을 온 고에게 "히데요시를 용서해 달라"라고 간청하며,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히데요시의 미래를 걱정하며 세상을 떠났다.
; 도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도요토미 히데츠구)
: (하시바 히데츠구→도요토미 히데츠구)
: 배역: 키타무라 유키야
: 히데요시의 누나 토모의 장남. 히데요시의 조카. 고의 의붓 오빠. 고로부터는 "의붓 형님"이라고 불린다.
: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는 별동대를 이끌고 도쿠가와 군의 역습을 받아, 대패하지만, 그 후의 기슈 정벌에서는 대장으로서 전공을 세워, 히데요시의 측근으로서 중용된다. 그러나 술버릇 등 그릇을 히데요시로부터 의문시되었고, 고에게도 미움을 받았지만, 츠루마츠의 죽음 후, 히데요시의 양자가 되어 관백의 자리를 물려받자, 동생 히데카츠와 재혼한 고와도 친교를 맺게 되고, 또한 독서가라는 의외의 면모도 보이게 된다.
: 그러나 히로이의 탄생으로 소외당하게 되고, 그것을 느껴 난폭해지기 시작하여, 이윽고 난행을 죄로 물어 유폐된다. 유폐된 곳을 방문한 고에게 해명을 촉구받지만, 히데츠구는 이미 각오를 굳히고, 고야산으로 추방된 후,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깨끗하게 할복했다. 그 후, 그의 일족도 모조리 처형되었다.
; 도요토미 히데카츠(豊臣秀勝)(도요토미 히데카츠)
: (하시바 히데카츠→도요토미 히데카츠)
: 배역: AKIRA
: 히데요시의 누나 토모의 차남. 히데요시의 조카이자 양자이기도 하다. 형 히데츠구를 진심으로 흠모하며, 관계는 좋다. 고의 두 번째 남편.
: 히데요시가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양자・히데카츠의 이름을 잇는다. 히데요시에게도 거리낌 없이 말하는 호쾌함 때문에 고에게 호감을 얻게 되지만, 큐슈 정벌의 은상에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에 추방된다. 그 후에는 아버지의 영지에서 히데츠구의 원조를 받으며 지내지만, 오다와라 공격을 앞두고 가이를 받아 복귀한다.
: 히데츠구가 관백이 되자, 그릇을 의심하는 히데요시로부터 히데츠구의 감시를 명받고, 고와의 결혼을 조건으로 이를 승낙한다. 그러나 부부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조선 출병에 종군하여, 당도에 포진한다. 그러나 조선 민중의 반발에서 비롯된 소동으로 부하에게 실수로 베어져 부상을 입고, 그 상처가 원인이 되어 병에 걸려 사망했다. 고와의 사이에 딸 완을 남겼다.
; 도요토미 히데나가(豊臣秀長)(도요토미 히데나가)
: (하시바 히데나가 → 도요토미 히데나가)
: 배역: 하카마다 요시히코
: 히데요시의 동생.
: 히데요시의 오른팔로서 오다 가신 시대부터 형을 지탱한다. 쾌락에 정신을 빼앗긴 히데요시를 훈계하는 일도 있지만, 측근에게 상냥한 형을 흠모하고 있다. 히데요시가 천하인으로서 출세함에 따라 도요토미 정권의 중진이 되어, 야마토코리야마 성의 성주가 되었다. 츠루마츠가 건강이 나빠진 것과 같은 시기에 병으로 쓰러져, 히데요시에게 리큐 등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자"야말로 신뢰하라고 유언하고, 츠루마츠를 대신하듯 사망했다.
; 히데나가의 아내
: 배역: 시바가키 아키
: 히데나가의 아내.
;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도요토미 히데요리)
: (히로이 → 도요토미 히데요리)
: 배역: 타이가 (어린 시절 1: 스다 류가 / 어린 시절 2: 쿠로사와 히로키 / 소년기: 타케다 카츠토)
: 히데요시와 요도의 사이에 태어난 차남. 어린 시절 이름은 '''히로이'''(拾, 줍다).
: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이 양립하여 태평한 세상을 구축하는 것을 원하고 있으며, 도쿠가와 가문을 적대시하는 어머니 요도를 설득하여 상경하여, 이에야스와 대면한다. 그 후에도 히데타다의 뜻을 알고 양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원했지만, 호코지 종명 사건으로 인해 합전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후에는 도쿠가와와의 합전을 결의하고, 패배를 맛본 후에는 요도와 함께 자결했다.
; 아사히 (아사히)
: 배역: 히로오카 유리코
: 히데요시의 여동생.
: 히데요시의 대담한 언행에 냉소적인 가신들 중에서, 유일하게 전면적으로 히데요시의 편을 들어, 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히데요시의 관백 취임 후에도 오사카에 머문다. 히데요시로부터 남편 진베와 이혼하고 이에야스에게 시집가라는 이야기를 받았을 때도, 형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고 승낙한다. 그러나 이에야스에게는 정중한 대우를 받지만 아내로서는 여겨지지 않았고, 상경 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없었다. 오만도코로의 문병을 위해 친가로 돌아가지만 자신이 병에 걸려, 주라쿠 다이에서 측근들에게 간호받으며 숨을 거둔다.
; 완 (사다)
: 배역: 야마모토 마이카 (어린 시절 1: 쿠리모토 유키 / 어린 시절 2: 이토 코코로)
: 고와 히데카츠의 장녀. 고가 히데타다와 재혼했을 때, 어머니와 헤어져 숙모 요도에게 맡겨진 후, 요도의 손에 의해 섭가의 쿠죠 타다이에에게 시집갔다.
; 토모
: 배역: 아치하 사토미
: 히데요시의 누나. 히데츠구와 히데카츠의 어머니.
: 히데요시의 초대를 받아, 어머니와 여동생 부부와 함께 오사카 성으로 들어간다. 히데요시의 관백 취임을 지켜보자, 오와리로 돌아갔다.
; 하시바 히데이에 (하시바 히데이에)
: 배역: 사이토 유우
: 히데요시의 양자. 우키타[28] 씨 출신.
: 히데요시의 다른 양자들과 함께 오사카 성에서 살고 있다.
; 하시바 히데카츠(羽柴秀勝)(하시바 히데카츠)
: (오츠기마루 → 오츠기마루 히데카츠 → 하시바 히데카츠)
: 배역: 사이토 슈스케
: 히데요시의 양자로, 오다 노부나가의 넷째 아들. 어린 시절 이름은 '''오츠기마루'''(お次丸, 오츠기마루).
: 히데요시가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양자로, 고 등과는 사촌 관계에 해당한다. 노부나가의 사후에도 하시바 가문의 일원으로 대우받았지만,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히데요시도 그 죽음을 슬퍼하여, 자신의 조카・코키치에게 "히데카츠"를 칭하게 했다.
; 츠루마츠 (츠루마츠)
: 배역: 오오타키 리오
: 히데요시와 요도의 사이에 태어난 적자.
: 당시, 적자가 없었던 히데요시에게는 간절히 바라던 장남이었다. 그러나 불과 3살에 목숨을 잃어, 히데요시와 요도를 슬프게 했다.
; 도요토미 쿠니마츠(豊臣国松)(도요토미 쿠니마츠)
: 배역: 미타니 쇼타
: 히데요리의 장남. 어머니는 히데요리의 측실. 오사카 성 함락 후, 붙잡혀 처형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3. 3. 2. 호소카와 가(家)
細川ガラシャ일본어 (호소카와 가라샤): (아케치 타마 → 호소카와 타마 → 호소카와 가라샤)
: 배우: 미무라
: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정실. 아케치 미츠히데의 딸. 이름은 '''타마'''이다.
: 고우 일행과는 교토에서 만난다. 혼노지의 변으로 미츠히데가 모반자가 되자, 시아버지 호소카와 유사이의 뜻에 따라 영내에 유폐되고, 이 사이에 타다오키가 측실을 들였기 때문에 부부 관계도 냉랭해진다. 유폐가 풀린 후에는 기독교에 기울어져, 고우의 격려로 세례를 받았다. 세키가하라 전투를 앞두고 남편과 화해하지만, 이시다 미츠나리에게 인질이 될 것을 요구받자 이를 거부하고 가신에게 자신을 죽게 하여 최후를 맞이했다.[16]
; 清原マリア일본어 (기요하라 마리아)
: (키요하라 이토 → 키요하라 마리아)
: 배우: 요시다 요
: 가라샤의 시녀. 이름은 '''이토'''.
: 가라샤의 시녀 중 으뜸가는 입장에 있으며, 그녀가 타다오키에게 유폐되었을 때도 그에 따른다. 기독교에 입신하여, 유폐 중에 희망을 잃은 가라샤(타마)에게 기독교를 가르쳤다. 후에 그녀의 뜻에 따라 선교사와의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그녀의 수세를 대행했다. 호소카와 저택이 미츠나리의 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가라샤에게 순사를 청했지만 허락받지 못하고, 오히려 가신과 시녀들을 맡게 되었기에 저택을 퇴거했다. 고우에게는 가라샤의 죽음을 편지로 적어 보고했다.[17]
; 細川忠興일본어 (호소카와 타다오키)
: 배우: 우치쿠라 켄지
: 오다 가문, 후에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 미츠히데의 사위이다. 센노 리큐의 제자이기도 하다.
: 조정 내 사정에 밝아 히데요시에게 섭가 내의 다툼을 가르쳐 그의 간파쿠 취임에 기여한다.
: 히데요시 사후에는 이에야스에게 접근. 또한 미츠나리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과 함께 이시다 저택을 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야스를 따라 우에스기 정벌에 출진하기 직전, 가라샤에게 혼노지의 변 때 지켜주지 못했던 것과 측실을 들여 그녀를 괴롭게 했던 것을 사과하고 화해한다. 그러나, 그 직후 가라샤가 미츠나리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격분하여, 코야마에서의 평정에서 가장 먼저 이에야스에 대한 가세를 선언했다.[18]
; 細川光千代일본어 (호소카와 미츠치요)
: 배우: 나카가와 타이시
: 타다오키와 가라샤의 셋째 아들.
: 히데요시 사후, 아버지가 이에야스에게 붙겠다는 의사 표시를 위해 인질로서 에도에 내려온다. 그 때, 고우에게 가라샤로부터의 편지를 건넨다.[19]
; 細川幽斎일본어 (호소카와 유사이)
: 배우: 오다 유타카
: 오다 가문의 가신. 단고미야즈 성 성주. 타다오키의 아버지. 이름은 '''후지타카'''.
: 아케치 미츠히데와는 아들 타다오키의 인연도 있어 친교가 깊었다. 그러나 혼노지의 변에 즈음하여 미츠히데에게 동심을 요청받았을 때 미츠히데의 불충에 분개하여 삭발하고 자령에 틀어박힌다. 그 때, 미츠히데의 딸인 타마를 죽일 것을 타다오키에게 강요했다.[20]
; 小笠原少斎일본어 (오가사와라 쇼사이)
: 배우: 마츠모토 신지
: 호소카와 가문 가신. 기독교도이기에 자해할 수 없는 가라샤에게 간청받아 창으로 가슴을 찔러 가이샤쿠했다.[21]
3. 3. 3. 쿄고쿠 가(家)
- '''쿄고쿠 다카쓰구''' - 사이토 타쿠미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다. 전국 무장 쿄고쿠 다카요시와 아자이 히사마사의 딸 마리아의 아들로, 고우를 포함한 세 자매의 사촌에 해당한다.
: 히데요시의 첩이 된 누나 류코의 도움으로, 혼노지의 변으로 아케치 측에 붙어 몰락한 쿄고쿠 가문을 재건하지만, "누나를 측실로 바쳐 출세했다"는 소문 때문에 하츠에게 "쓸모없는 남자"라고 혹평받기도 했다.[11]
: 우연히 만난 하츠와 서로에게 끌려, 하츠의 언니인 차차의 히데요시에 대한 중재도 있어 결혼에 이른다. 그 전까지 과자를 싫어했지만, 과자를 좋아하는 하츠와의 결혼을 계기로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맹세한다.
: 도요토미 은고의 다이묘이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도 친분이 있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망설인 끝에 처음에는 서군에 붙었다가 나중에 동군에 합류하는 선택을 한다. 거성인 오쓰성이 서군의 격렬한 공격에 노출되었지만 분전하여, 결국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서군을 하츠와 함께 묶어두는 공을 세웠다. 패전 후에는 고야산에서 근신했지만, 이에야스로부터 전공을 치하받아 불려 돌아와, 와카사국오바마에 봉해진다. 그 후에는 주군인 도요토미와 은혜를 입은 도쿠가와의 대립에 마음 아파하면서, 하츠에게 후사를 맡기고 사망했다.[11]
- '''주호인''' - 스즈키 사와
: 타카츠구의 누나로, 고우를 포함한 세 자매의 사촌에 해당한다. 혼노지의 변 이후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었다.
: 밝고 넉살 좋은 성격으로, 품위 있는 몸가짐과 본작의 여성진에서는 드물게 여성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히데요시와 차차의 관계 등, 여러 일들을 즐겁게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며, 어딘가 허술한 면이 있지만, 그녀 나름의 통찰력도 가지고 있다.[11]
: 남편이 야마자키 전투에서 미츠히데에 붙어 전사하여, 쿄고쿠 가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히데요시의 측실이 된다. 처음에는 싫어했지만, 곁에서 보살피는 동안 그의 인간성에 끌리게 되었다. 정실 오네와의 관계도 양호하다. 남동생 타카츠구가 하츠에게 결혼을 청했을 때, 타카츠구의 소문 때문에 결심하지 못하고 있던 하츠에게 소문의 진상과 동생의 마음을 이야기하며, 그녀의 마음을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고우가 남편 히데카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 남편의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발언하여, 하츠에게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푸념을 듣기도 했다. 또한, 히데요시에 대한 애정은 깊어, 그의 사후에는 슬픔에 잠겨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다. 그 당시, 앞서 언급한 말을 고우에게 사과했다.
: 남동생 타카츠구의 사후에는 하츠와 마찬가지로 출가하여 '''주호인'''이라고 칭한다. 그 후, 에도로 갔을 때, 히데요리의 죽음 이후 우울해하는 센의 일로 고우에게 상담받아, "시집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진언한다.[11]
3. 3. 4. 이시다 가(家)
이시다 미츠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고부교 중 한 명이다. 하기와라 마사토가 연기하였다. 아자이 가문의 옛 신하 출신으로, 히데요시의 심복으로 활동하며 센노 리큐를 모함하거나 도요토미 히데츠구 일족을 몰아내는 등, 히데요시와 요도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지나친 충성심으로 고우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항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하고 처형되었다. 처형 전,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요도와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후사를 부탁했다. 고우는 미쓰나리의 충성심을 칭찬했다.[1]시마 사콘은 이시다 미츠나리의 측근으로, 나카무라 이쿠지가 연기하였다. 미쓰나리를 보좌하며 사와 산성 근신 때도 동행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했다.[1]
3. 3. 5. 구로다 가(家)
구로다 간베에(시바 토시오 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사였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여 걸을 때 지팡이를 사용했다.[18]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를 섬기던 시절부터 그의 측근으로 활약했으며, 노부나가가 죽은 후에는 히데요시의 천하 통일에 큰 공을 세웠다. 히데요시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으나, 이시다 미츠나리가 그의 지략을 경계하게 되자, 천하 통일 후에는 아들 나가마사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퇴했다.[18]구로다 나가마사(하세가와 키미히코 분)는 간베에의 아들이자 도요토미 가문의 무장이다.[19] 아버지 간베에가 은거하면서 가독을 이어받았고, 조선 출병 때에는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과 함께 참전했다. 히데요시 사후에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이시다 미츠나리와의 갈등이 심해져,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과 함께 이시다의 저택을 습격하는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고야마 회의에서는 마사노리와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지하고 미쓰나리를 타도할 것을 주장했다.[19]
3. 3. 6. 사나다 가(家)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는 도요토미 산하의 다이묘로, 시나노국 우에다성 성주였다.[1] 사나다 노부시게(真田幸村)는 사나다 마사유키의 차남이다.[2] 아버지와 함께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농락하여 세키가하라 전투에 늦게 참여하도록 하였다.[3]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가담했기 때문에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이끄는 군세에게 우에다 성을 공격받았지만, 마사유키는 수성에 전념하여 히데타다 군을 접근시키지 못했고, 결국 히데타다 군은 세키가하라 전투에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4] 전투 후 유키무라는 고야산에 칩거하게 되지만, 오사카 전투 때 낭인 중 한 명으로 참전한다.[5] 오사카 여름전투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몰아붙였지만, 결국 쓰러뜨리는 데 실패하고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것을 히데타다 등이 발견,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6]
3. 3. 7. 그 외 도요토미 가신
- 이시다 미츠나리 - 하기와라 마사토
: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오봉행 중 한 명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대립이 깊어지자, 사와 산성에서 근신하기도 했다. 거병 후에는 군사를 이끌고 세키가하라에 포진한다.
- 시마 사콘 - 나카무라 이쿠지
: 미츠나리의 측근으로, 미츠나리가 사와 산성에서 근신할 때도 동행했다. 미츠나리가 거병하자 군사로서 세키가하라에 참전한다.
- 구로다 간베에 - 시바 토시오
: 히데요시의 군사로, 한쪽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사용한다.
- 구로다 나가마사 - 하세가와 키미히코
: 간베에의 아들로, 도요토미 가문의 무장이다.
- 사나다 마사유키 - 후지나미 타츠미
: 도요토미 산하의 다이묘로, 시나노국 우에다 성주이다.
- 사나다 유키무라 - 하나다 마나부
: 사나다 마사유키의 차남으로, 아버지와 함께 히데타다를 농락하여 세키가하라 전투에 늦게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 도요토미 가신으로, 오쿠라쿄노 츠보네의 아들이다. 도쿠가와 가문의 소식을 경계하며,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히데타다 군의 포탄에 맞아 쓰러졌다.
- 가타기리 가쓰모토 - 미타무라 쿠니히코
: 도요토미 가문의 중신이다.
- 마에다 토시이에 - 오이데 슌 (장년기: 와다 케이사쿠)
: 원래 오다 가문의 가신이었으나, 후에 도요토미 가문 산하에 들어갔다.
- 후루타 오리베 - 후루사와 이와오
: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이름은 시게나리이다. 센노 리큐의 다도 제자이기도 하며, 리큐에게 가장 주목받는 다인이었다. 리큐가 히데요시에게 은퇴를 요구받았을 때 후계자로 추천되었다.
- 후쿠시마 마사노리 - 카나야마 카즈히코
: 도요토미 가문의 무장이다.
- 가토 기요마사 - 요코야마 카즈토시
: 도요토미 가문의 무장이다.
- 모리 데루모토 - 하마다 아키라
: 도요토미 산하의 다이묘로 오대로 중 한 명이며, 주고쿠 지방에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시다 미츠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대결에서 도요토미 군(서군) 총대장으로 옹립되어 오사카성에 들어갔다.
- 소에다 진베에 - 스미다 타카시
: 아사히의 남편이다.
- 고토 마타베 - 키무라 사카에
: 도요토미 가문의 무장으로, 사나다 유키무라처럼 낭인 신분으로 오사카 성에 들어갔다. 고마쓰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 모리 가쓰나가 - 아오야마 요시노리
: 도요토미 가문의 무장. 전 도요토미 휘하의 소다이묘로 관위는 부젠노카미. 사나다 유키무라와 마찬가지로 낭인의 신분으로 오사카성에 들어간다.
- 우에스기 가게카츠 - 와다 쇼
: 아이즈 120만 석의 다이묘. 도요토미 오대로 중 한 명. 우에스기 겐신의 양자.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상경 요청을 거부하고 대립 자세를 보이자, 이에 격노한 이에야스는 우에스기 정벌을 결단하고, 세키가하라 전투 발발의 원인이 된다.
- 나오에 가네쓰구 - 마츠모토 신지
: 우에스기 가문의 중신.
3. 3. 8. 그 외 도요토미 일가 여성
- 오오타케 시노부(오네)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실. 히데요시 사후 고다이인으로 불렸다.
- 나라오카 토모코(오오만도코로) - 히데요시의 어머니.
- 히로오카 유리코(아사히) - 히데요시의 여동생.
- 아사와 사토미(토모) - 히데요시의 누나. 도요토미 히데츠구와 도요토미 히데카쓰의 어머니.
- 야마모토 마이카(사다) - 고우와 도요토미 히데카쓰의 장녀. 구죠 유키이에와 혼인.
- 스즈키 사와(쿄고쿠 타츠코)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첩. 아자이 나가마사의 누나 쿄고쿠 마리아의 딸.
- 야마구치 카린(코조스) - 코다이인의 필두 시녀였던 비구니.
- 야마노우치 메이비(토요) -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첩.
3. 4. 도쿠가와 가문
이에야스와 히데타다를 중심으로 한 도쿠가와 가문은 에도 막부를 세우고 일본을 통치한 핵심 가문이다. 이 섹션에서는 도쿠가와 가문을 섬긴 주요 인물들과 그들의 역할을 살펴본다.- 혼다 타다카츠 (카리야 슌스케 분): 통칭 헤이하치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의 상담역을 맡았다.[1]
- 아마노 야스카게 (츠루타 시노부 분): 이에야스의 중신. 히데타다 군이 세키가하라에 늦은 일을 고에게 보고했다.[2]
- 사카이 타다츠구 (사쿠라기 켄이치 분): 도쿠가와 가문을 섬기며 중개 및 실무 등 사무를 맡았다.[3]
- 오오쿠보 타다치카 (아토 카이 분): 히데타다의 중신. 우에스기 정벌 때 히데타다의 후원자로 배치되었으나, 결과적으로 히데타다를 세키가하라 본전에 늦게 도착하게 만들었다.[4]
- 하야시 라잔 (하야시 야스후미 분): 유학자. 도쿠가와 2대 쇼군 히데타다의 상담역으로 슨푸의 이에야스에게서 에도에 파견되었다. 후사 문제에 대해 후쿠의 질문에 "장유유서를 존중하고 타케치요를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라는 지론으로 후쿠를 기쁘게 했다.[5]
- 사카이 타다토시 (이시이 요스케 분): 도쿠가와 가신. 오사카 성 해자를 메운 건에 대해 고에게 보고했다.[6]
- 이케다 요시타카 (시부야 타케루 분): 도쿠가와 정권하의 장군. 하리마국 히메지번주. 통칭 신타로. 어린 나이에 히메지 번을 상속받아 히데타다에 의해 이 감봉된 채 이나바국 돗토리번으로 이봉되었다.[7]
- 호시나 코마츠 (코바야시 카이토 분): 시나노국 타카토 번주 호시나 마사미츠의 양자이자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사생아. 고는 그의 존재에 동요했지만, 사지 가즈나리의 진언에 따라 그를 만나고 의기투합했다.[8]
- 스우덴 (코비야마 요이치 분): 이에야스의 측근 승려. 오사카 전투 후, 이에야스가 주도하는 무가의 모든 법도 제정에 관여하고 그 조문을 다이묘들 앞에서 불렀다.[9]
- 오오바노 츠보네 (카가 마리코 분): 히데타다의 유모로, 고우를 엄격하게 지도했지만 좋은 후견인이 되어주었다.
- 후쿠 (토미타 야스코 분): 사이토 도시미쓰의 딸이자 이나바 마사나리의 아내. 타케치요의 유모이며, 훗날 가스가노 쓰보네가 된다.
- 나츠 (아사쿠라 아키 분): 히데타다의 시녀.
- 아챠노 쓰보네 (야마노 우미 분): 이에야스의 첩. 오사카 겨울 전투의 화해 교섭 역할로 뽑혀 도요토미 측 대표 조코인과 회견했다.[1]
- 혼다 마사노부 (쿠사카리 마사오 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으로, 히데타다의 상담역을 맡았다.
- 혼다 마사즈미 (나카야마 마사키 분): 마사노부의 아들로, 이에야스의 가신으로 활동했다.
3. 4. 1. 도쿠가와 일족
키타오지 킨야 (도쿠가와 이에야스)[13]: 오다 가문과 동맹을 맺은 전국 다이묘이다. 미카와국을 중심으로 도카이 일대를 다스렸으며, 후에 에도를 거점으로 간토로 영지를 옮겼다. 히데타다의 아버지이다.[13]
: 사카이 견학 때 고와 동행했고, 이가고에도 함께했다. 사태를 관망하며 기회를 엿보는 경우가 많았다. 히데요시와 한 차례 싸운 후 신종을 거부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회유책에 굴복했다. 이후에도 천하의 형세를 살폈다.[13]
: 히데타다에게 시집가는 것을 거부하던 고에게 "히데타다의 마음을 열어달라"고 부탁해, 그녀의 마음을 정하게 했다.[13]
: 히데요시 사후에는 도요토미 가문을 받들면서 세력을 키워 도요토미 가문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종명 사건을 계기로 "자신에게 마지막 싸움"으로 오사카 전투에 임했다.[13]
: 히데타다와는 도요토미 가문 처우 문제로 충돌하는 등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아들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13]
: 도요토미 가문 멸망 후 히데타다에게 정치를 일임하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냈다. 병으로 쓰러져 히데타다와 속마음을 털어놓고 화해했다. 고와 히데타다 부부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며 숨을 거두었다.[13]
무카이 오사무 (도쿠가와 히데타다)[14]
: (다케치요 → 도쿠가와 다케치요 → 도쿠가와 히데타다)[14]
: 이에야스의 셋째 아들이다. 어릴 적 이름은 '''다케치요'''이다.[14]
: 이에야스는 히데타다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여겨봤다. 어린 시절에는 밝고 활달했지만, 처자식을 정략의 도구로 희생시키는 이에야스를 보며 차갑고 비꼬는 성격이 되었다. 고와는 아사히 문병 때 만났으며, 이후에도 만날 때마다 비꼬는 말을 해 나쁜 인상을 주었다.[14]
: 고와 결혼 후에도 냉담한 태도를 보였고, 고의 간청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후에도 거리를 두었지만, 자식 사랑과 전쟁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며 거리를 좁혀갔다.[14]
: 도요토미 가문과 대립하는 것에 부정적이었고, 쇼군직 계승을 거부했지만, "천하태평을 위해 쇼군이 되어달라"는 고의 설득에 승낙한다. "히데요리를 관백으로, 자신은 쇼군으로 지지하며 태평한 세상을 건설한다"는 안을 구상했지만, 이에야스에게 일축당했다. 오사카 겨울 전투 개전 후에도 아버지와 선을 긋고 평화적 해결을 모색했지만, 불가능함을 깨닫고 총공격 명령을 내려 요도와 히데요리를 자결하게 했다.[14]
: 쇼군직 양보 후에도 정치에 참견하는 아버지를 귀찮게 여겼지만, 임종을 맞은 이에야스에게는 아들로서 마음을 전했다.[14]
: 이에야스 사후 아들 이에미쓰를 위해 다이묘들에게 엄격한 자세를 취했다.[14]
쿠츠나 시오리 (센)[15]
: 히데타다의 장녀 (고의 둘째 딸)이다.[15]
: 도쿠가와 가문과 도요토미 가문의 가교가 되기 위해 7살에 혼례를 치렀다. 히데요리와 서로 사랑했지만, 오사카 전투로 인해 두 가문이 적대하게 되어 남편을 잃었다. 도요토미 가문 멸망 후 에도로 돌아와 총공격 명령을 내린 아버지 히데타다를 원망했지만, 고의 설득에 혼다 타다토키에게 시집갔다.[15]
키무라 쇼고 (도쿠가와 노부야스)[16]
: 이에야스의 장남. 어머니는 츠키야마이다.[16]
: 무장으로서 뛰어났고 이에야스의 기대가 컸으며, 노부나가의 딸 토쿠와 결혼하는 등 오다 가문과의 동맹에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토쿠의 "노부야스가 다케다 가문에 내통한다"는 밀고로 노부나가로부터 할복 명령을 받았다. 이에야스는 고뇌 끝에 노부야스를 할복시켰다.[16]
마에다 켄 (유우키 히데야스)[17]
: (오기마루 → 하네다 히데야스 → 도요토미 히데야스 → 유우키 히데야스)[17]
: 이에야스의 차남. 후에 히데요시의 양자가 되었다. 어릴 적 이름은 '''오기마루'''이다.[17]
: 형 노부야스 사후 도쿠가와 가문의 후계자로 여겨졌지만, 코마키·나가쿠테 전투 후 인질로 히데요시의 양자가 되었다. 히데요시를 따랐고, 히데요시의 양자들을 엿보던 고를 놀라게 했다.[17]
: 후에 간토 다이묘 유우키 가문의 가독을 상속했다. 히데요시 사후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다. 세키가하라 전투 참전을 허락받지 못했고, 전쟁 후 기타노쇼에 을 받았다.[17]
키사키 나오토 (도쿠가와 타케치요)[18]
: (다케치요 → 도쿠가와 다케치요 → 도쿠가와 이에미츠)[18]
: 고의 장남 (히데타다의 둘째 아들). 성인이 된 후 '''이에미쓰'''를 칭했다.[18]
: 유모 후쿠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연약한 체질로 후쿠에게 의존했고, 고에게 따르려 하지 않았다. 성장 후에는 동생 쿠니마츠를 괴롭히는 등 폭력적인 성격을 보여 고에게 반쯤 버려졌다. 그러나 전쟁을 싫어하는 상냥한 성격으로,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후쿠에게서 그 사실을 들은 고는 타케치요와 화해했다.[18]
이마가와 토모마사 (도쿠가와 쿠니마츠)[19]
: (쿠니마츠 → 도쿠가와 쿠니마츠 → 도쿠가와 타다나가)[19]
: 고의 차남 (히데타다의 셋째 아들). 타케치요의 동생. 성인이 된 후 '''타다나가'''를 칭했다.[19]
: 명랑하고 상냥한 성격이지만, 고모 죠코인은 "너무 맹랑하다"고 평가했다.[19]
: 형 타케치요가 후쿠에게 양육된 탓에 고가 직접 양육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고, 고는 명석한 동생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그 때문에 타케치요에게 괴롭힘을 당했다.[19]
아사노 카요 (츠키야마)[20]
: 이에야스의 정실. 히데타다의 의붓어머니이다.[20]
: 아들 노부야스와 함께 다케다 가문 내통 혐의를 받아 남편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살해당했다.[20]
와타나베 아오이 (타마)[21]
: 히데타다의 차녀 (고의 셋째 딸)이다.[21]
: 조부 이에야스의 명으로 3살에 마에다 가문에 시집갔다. 시집간 후는 최종회에서 코다이인의 대화에 등장할 뿐이다.[21]
엔도 유미 (카츠)[22]
: 히데타다의 셋째 딸 (고의 넷째 딸)이다.[22]
: 사촌 마츠다이라 타다나오에게 시집갔다.[22]
하츠[23]
: 히데타다의 넷째 딸 (고의 다섯째 딸)이다.[23]
: 고가 센의 혼례로 후시미 성에 있을 때 태어났다. 어린 딸들을 정략결혼으로 떠나보낸 고의 저항으로, "다른 가문에는 시집 보내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양녀를 원했던 하츠에게 양녀로 보내져 양어머니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23]
카미시라이시 모네 (마사)[24]
: 히데타다의 다섯째 딸 (고의 여섯째 딸)이다.[24]
: 고의 딸 중 유일하게 오사카 전투 후까지 에도에 있었지만, 고미즈노오 천황의 비가 되기 위해 상경했다.[24]
카사이 유키나 (타카코)[25]
: 전 관백 타카츠카사 노부후사의 딸. 사사 나리마사의 외손녀이다.[25]
: 이에미쓰의 정실이 되기 위해 에도성으로 들어갔다.[25]
카리야 슌스케 (혼다 타다카츠)
: 통칭 헤이하치로. 세키가하라 전투 때 이에야스의 상담역을 맡았다.
츠루타 시노부 (아마노 야스카게)
: 이에야스의 중신. 히데타다 군이 세키가하라에 늦은 일을 고에게 보고했다.
사쿠라기 켄이치 (사카이 타다츠구)
: 도쿠가와 가문에 봉사하며 중개 및 실무 등 사무를 맡았다.
아토 카이 (오오쿠보 타다치카)
: 히데타다의 중신. 우에스기 정벌 때 히데타다의 후원자로 배치되어, 결과적으로 히데타다를 세키가하라 본선에 지각시켰다.
하야시 야스후미 (하야시 라잔)
: 유학자. 도쿠가와 2대 쇼군으로서 자각을 가진 히데타다의 상담역으로 슨푸의 이에야스에게서 에도에 파견되었다. 후사 문제에 대해 후쿠의 질문에 "장유유서를 존중하고 타케치요를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는 지론으로 후쿠를 기쁘게 했다.
이시이 요스케 (사카이 타다토시)
: 도쿠가와 가신. 오사카 성 해자가 메워진 것에 대해 고에게 보고했다.
시부야 타케루 (이케다 요시타카)
: 도쿠가와 정권하의 장군. 하리마 국 히메지 번주. 통칭 신타로. 어린 나이에 히메지 번을 상속받아 히데타다에 의해 10여만 석이 감봉된 채 이나바국 돗토리번으로 이봉되었다.
코바야시 카이토 (호시나 코마츠)
: 시나노국 타카토 번주·호시나 마사미츠의 양자.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사생아. 고는 그의 존재에 동요했지만, 사지 카즈나리의 진언에 따라 그를 만나 의기투합했다.
코비야마 요이치 (스우덴)
: 이에야스의 측근 승려. 오사카 전투 후 이에야스가 주도하는 무가 법도 제정에 관여하고 조문을 다이묘들 앞에서 불렀다.
카가 마리코 (오오바노 츠보네)
: 히데타다의 유모.
토미타 야스코 (후쿠)
: 사이토 토시미츠의 딸. 이나바 마사나리의 아내. 타케치요의 유모. 후의 카스가노 츠보네.
아사쿠라 아키 (나츠)
: 히데타다의 몸종.
야마노 우미 (아챠노 츠보네)
: 이에야스의 첩. 오사카 겨울전투의 화해 교섭 역할로 뽑혀 도요토미 측 대표 죠코인과 회견했다.
이와세 료 (호조 우지나오)
: 호조 가문 5대 당주. 우지마사의 아들. 아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딸. 아버지와 비교하면 마음 약한 성격으로, 히데요시의 호조 공세에 불안을 호소했다. 결국 히데요시에게 항복하여 패배했다.
시미즈 코지 (호조 우지마사)
: 사가미국 오다와라성을 중심으로 간토를 다스리는 센고쿠 다이묘. 호조 가문 4대 당주. 호조 우지야스의 아들. 난공불락의 오다와라 성을 의지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치했다. 히데요시가 칸베에의 책략으로 이시가키 산에 쌓은 성을 보고 전의를 상실하여 항복했다. 후에 할복했다.
3. 4. 2. 혼다 가(家)
- 혼다 타다카츠 (카리야 슌스케 분): 통칭 헤이하치로. 세키가하라 전투 때 이에야스의 측근으로 상담역을 맡았다.
- 아마노 야스카게 (츠루타 시노부 분): 이에야스의 중신. 히데타다 군이 세키가하라에 늦은 일을 고우에게 보고했다.
- 사카이 타다츠구 (사쿠라기 켄이치 분): 도쿠가와 가문에 봉사하며 중개 및 실무 등의 사무를 맡았다.
- 오오쿠보 타다치카 (아토 카이 분): 히데타다의 중신. 우에스기 정벌 때 히데타다의 후원자로 배치되었으나, 결과적으로 히데타다를 세키가하라 본전에 늦게 도착하게 만들었다.
- 하야시 라잔 (하야시 야스후미 분): 유학자. 도쿠가와 2대 쇼군으로서 자각을 갖게 된 히데타다의 상담역으로 슨푸의 이에야스에게서 에도로 파견되었다. 후사 문제에 대해 후쿠의 질문에 "장유유서를 존중하고 타케치요를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라는 지론으로 후쿠를 기쁘게 했다.
- 사카이 타다토시 (이시이 요스케 분): 도쿠가와 가신. 오사카 성 해자를 메운 건에 대해 고우에게 보고했다.
- 이케다 요시타카 (시부야 타케루 분): 도쿠가와 정권하의 장군. 하리마국 히메지번주. 통칭 신타로. 어린 나이에 히메지 번을 상속받아 히데타다에 의해 10여만 석이 감봉된 채 이나바국 돗토리번으로 이봉되었다.
- 호시나 코마츠 (코바야시 카이토 분): 시나노국 타카토 번주 호시나 마사미츠의 양자.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사생아. 고우는 그의 존재에 동요했지만, 사지 카즈나리의 진언에 따라 그를 만나고 의기투합했다.
- 스우덴 (코비야마 요이치 분): 이에야스의 측근 승려. 오사카 전투 후, 이에야스가 주도하는 무가의 모든 법도 제정에 관여하고 그 조문을 다이묘들 앞에서 불렀다.
- 오오바노 츠보네 (카가 마리코 분): 히데타다의 유모.
- 후쿠 (토미타 야스코 분): 사이토 토시미츠의 딸. 이나바 마사나리의 아내. 타케치요의 유모. 후의 카스가노 츠보네.
- 나츠 (아사쿠라 아키 분): 히데타다의 몸종.
- 아챠노 츠보네 (야마노 우미 분): 이에야스의 첩. 오사카 겨울 전투의 화해 교섭 역할로 뽑혀 도요토미 측 대표 죠코인과 회견했다.
- 혼다 마사노부 (쿠사카리 마사오 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 통칭은 사도노카미. 이에야스로부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후견인으로 임명받아 상담역으로서 히데타다를 보좌했다. 세키가하라 전투 때 우에다 성 공격을 간했지만, 히데타다 군이 본전에 도착하지 못했다. 히데타다가 쇼군에 취임한 후에는 이에야스와 함께 슨푸로도 출두했다. 최후에는 병으로 쓰러져 히데타다에게 마음을 독하게 먹고 정치에 임할 것을 유언하고, 숨겨둔 아들인 코우마츠에 대해 고우에게 털어놓도록 권하고 세상을 떠났다.
- 혼다 마사즈미 (나카야마 마사키 분): 마사노부의 아들. 이에야스의 가신. 통칭은 코즈케노스케. 아버지 마사노부가 히데타다 측근이 되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참모로서 이에야스에게 근시했다. 특히 도요토미 가문과의 외교전에서 활약했다. 히데타다의 대가 되자 막부를 경시하는 소행이 있다고 책망받아 유배형에 처해졌다.
3. 4. 3. 그 외 도쿠가와 가신
; 혼다 타다카츠 (카리야 슌스케): 통칭 헤이하치로. 세키가하라 전투 때 이에야스의 상담역을 맡았다.[1]; 아마노 야스카게 (츠루타 시노부): 이에야스의 중신. 히데타다 군이 세키가하라에 늦은 일을 고우에게 보고했다.[2]
; 사카이 타다츠구 (사쿠라기 켄이치): 도쿠가와 가문에 봉사하고, 중개 및 실무 등의 사무에 임하고 있다.[3]
; 오오쿠보 타다치카 (아토 카이): 히데타다의 중신. 우에스기 정벌 때 히데타다의 후원자 역할을 맡았으나, 결과적으로 히데타다를 세키가하라 본선에 지각하게 만들었다.[4]
; 하야시 라잔 (하야시 야스후미): 유학자. 도쿠가와 2대 쇼군 히데타다의 상담역으로, 슨푸의 이에야스부터 에도에 파견되었다. 후사 문제에 대해 후쿠의 질문에 "장유유서를 존중하고 타케치요를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라는 지론으로 후쿠를 기쁘게 했다.[5]
; 사카이 타다토시 (이시이 요스케): 도쿠가와 가신. 오사카 성 해자를 메우는 것에 대해 고우에게 보고했다.[6]
; 이케다 요시타카 (시부야 타케루): 도쿠가와 정권하의 장군. 하리마국 히메지 번주. 통칭 신타로. 어린 나이에 히메지 번을 상속받아 히데타다에 의해 10여만 석이 감봉된 채 이나바국 돗토리번으로 이봉한다.[7]
; 호시나 코마츠 (코바야시 카이토): 시나노국 타카토 번주·호시나 마사미츠의 양자.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사생아. 고우는 그의 존재에 동요했지만, 사지 카즈나리의 진언에 따라 그를 만나고 의기투합했다.[8]
; 스우덴 (코비야마 요이치): 이에야스의 측근 승려. 오사카 전투 후, 이에야스가 주도하는 무가의 모든 법도 제정에 관여하고 그 조문을 다이묘들 앞에서 불렀다.[9]
3. 4. 4. 그 외 도쿠가와 일가 여성
- '''오바노 쓰보네''' (大姥局|오바노 쓰보네일본어, 배우: 카가 마리코)
히데타다의 유모이다. 이에야스와는 구면으로, 그 인연으로 히데타다의 어린 시절부터 시중을 들었다. 성격이 격렬하고 잔소리가 심하며, 도요토미 가에 있었을 때의 생활 태도를 떨쳐내지 못한 고우를 엄격하게 지도했다. 누구보다 히데타다의 적자 탄생을 원했으며, 고우가 좀처럼 아들을 낳지 못했을 때는 격려했다. 고우가 타케치요를 낳았을 때는 기뻐하면서도, 뜻대로 타케치요를 돌보지 못하는 것에 불평하는 고우에게 "각오가 부족하십니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고우와의 대립 관계도 완화되어, 좋은 후견인으로서 고우를 돕는다. 만년에는 고우와 후쿠, 그리고 히데타다와 이에야스의 대립을 걱정하며, 그 수복에 힘썼다. 그 후 병에 걸려, 타케치요와의 관계를 포기했던 고우에게 "어미가 자식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에도성을 떠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1]
- '''후쿠''' (福|후쿠일본어, 배우: 토미타 야스코)
사이토 도시미츠의 딸이자, 이나바 마사나리의 아내이다. 타케치요의 유모로, 훗날의 가스가노 쓰보네이다. 고우와 거의 분리된 형태로 타케치요를 양육하며, 또한 히데요시에게 아버지가 십자가형을 당한 것으로 도요토미 가를 증오하여, 그 멸망을 바랐기 때문에, 고우와 대립했다. 타케치요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위태로워지자, 폐적을 막기 위해 분주했다. 타케치요가 후계자로 정해지면서 고우와의 앙금도 해소되고, 후에 오오쿠 총취임으로 임명되었다.[1]
- '''나츠''' (ナツ|나츠일본어, 배우: 아사쿠라 아키)
히데타다의 시녀이다. 고우와 히데타다가 아직 마음을 통하기 전에 히데타다의 손을 타 서장자를 출산했다. 고우보다 먼저 아들을 낳게 되었기 때문에 그 존재는 간신히 숨겨졌다. 그 후, 일이 드러나자, 히데타다의 명으로 아들과 함께 에도성을 내려가게 되지만, 오바노 쓰보네의 중재도 있어서 고우와 화해했다.[1]
- '''아차노 쓰보네''' (阿茶局|아차노 쓰보네일본어, 배우: 야마노 우미)
이에야스의 측실이다. 오사카 겨울 전투의 화의 교섭역으로 선발되어, 도요토미 측 대표인 조코인과 회견한다.[1]
3. 5. 호조 가(家)
; 호조 우지마사사가미 국 오다와라성을 중심으로 간토 지방을 다스리는 전국 다이묘이자 호조 가문의 선대 당주이다.[1] 난공불락의 오다와라 성을 믿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립했지만, 히데요시가 칸베에의 헌책으로 이시가키야마에 쌓은 성을 보고 전의를 상실하여 결국 항복한 후 할복한다.[1]
; 호조 우지나오
호조 가문의 당주이자 호조 우지마사의 아들이다.[1] 아내는 이에야스의 딸이다.[1] 아버지에 비해 유약한 성격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호조 공격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일이 많았으며, 결국 히데요시에게 항전하여 패배한다.[1]
3. 6. 그 외 무장 가문
- '''센노 리큐''' (이시자카 코지 분)
: 센노 소우에키|센노 소에키일본어에서 센노 리큐로 개명. 사카이 출신의 다인이다. 오다 노부나가에게 "일본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스승이 되었다. 히데요시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가치관 차이와 이시다 미쓰나리의 참언으로 할복을 명받는다.[24]
- '''루이스 프로이스''' (오지엘 노자키 분)
: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아즈치에서 선교 활동을 했으며, 고우와 만났을 때 손등 키스로 그녀를 놀라게 했다.
- '''고우안''' (에토 칸사이 분)
: 의사. 오이치의 부탁으로 낙태 약을 처방한다.
- '''아사쿠라 요시카게''' (나카야마 진 분)
: 에치젠 국의 센고쿠 다이묘. 아자이 나가마사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오다 노부나가에 대항하려 했으나, 아네가와 전투에서 패배하고 결국 자결했다.
- '''아시카가 요시아키''' (이즈미 모토야 분)
: 무로마치 막부 제15대 쇼군. 오다 노부나가의 도움으로 쇼군에 취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여러 다이묘를 규합해 노부나가에게 대항했지만 패배하고 교토에서 추방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 제안을 거절했다.
- '''다케다 가쓰요리''' (히사마쓰 노부미 분)
: 가이 국의 센고쿠 다이묘. 오다 가문과 적대했으나 세력이 약화되어 덴모쿠산 전투에서 자결했다.
- '''사나다 유키무라''' (하마다 마나부 분)
- '''사나다 마사유키''' (후지나미 타츠미 분)
- '''쿄고쿠 타카츠구''' (사이토 타쿠미 분)
- '''모리 테루모토''' (하마다 아키라 분)
- '''호조 우지마사''' (시미즈 코지 분)
3. 7. 고노에 가(家)
; 고노에 류잔: 배우: 에라 준
: 오섭가의 으뜸인 고노에 가의 전 당주이다. 첫 등장 시에는 이미 삭발한 상태였다.
: 하시바 히데요시가 관백 취임을 꾀하며 고노에 가문의 양자로 삼아달라는 요청을 받자, 그 대가로 딸 사키코의 입내 약속과 금은보화를 받아들여 이를 승낙했다. 후에 아들인 노부타다와 함께 다시 히데요시와 면회하여, 히데요시의 관백 취임을 지지한다.
; 고노에 노부타다
: 배우: 스기자키 마사히로
: 고노에 가문의 당주이자 류잔의 아들이다.
: 같은 오섭가인 관백 니조 아키자네와 그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었으나, 아버지의 양자로 들어온 하시바 히데요시로부터 관백 임명의 중재를 부탁받는다. 처음에는 히데요시의 출신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고노에 가문을 비롯한 오섭가의 영지 증가와 재산을 보고 압도되어 이를 승낙했다.
3. 8. 그 외
- 이즈미 모토야 - 아시카가 요시아키 역, 아시카가 막부 제15대 쇼군
- 나카야마 진 - 아사쿠라 요시카게 역
- 이시자카 코지 - 센노 리큐 역, 유명한 다도가(茶道家)
- 하마다 마나부 - 사나다 유키무라 역
- 후지나미 타츠미 - 사나다 마사유키 역
- 사이토 타쿠미 - 쿄고쿠 타카츠구 역
- 하마다 아키라 - 모리 테루모토 역
- 시미즈 코지 - 호조 우지마사 역
- 히사마츠 노부요시 - 다케다 가쓰요리 역
; 센노 리큐
: (센노 소에키 → 센노 리큐)
: 배우: 이시자카 코지
: 사카이 출신의 다인. 이름은 '''소에키'''.
: 노부나가에게 다두(茶頭)로 섬기며, 권력자에게 아첨하지 않고 오로지 미를 추구하는 자세는 노부나가에게 "일본 제일"이라고 평가받았다.
: 노부나가의 사후, 히데요시에게 매력을 느껴 그의 다두가 된다. 높은 견식과 통찰력에서 나오는 리큐의 말은 세 자매와 히데요시에게 귀중한 조언이 된다. 이윽고 조정으로부터 '''리큐'''라는 거사호를 받아 명실상부한 천하 제일의 다인이 된다.
: 그러나 천하인이 된 히데요시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양자 간에는 갈등이 생긴다. 또한 차를 통해 많은 다이묘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리큐를 위험시한 미쓰나리의 참언으로 인해 결국 히데요시로부터 할복을 명받는다. "히데요시에게 사과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며 번의를 구하는 고우에게 리큐는 마지막 차를 끓여, 다인이 아닌 인간 리큐의 "모두가 웃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는 소원을 맡기고 할복했다.
; 루이스 프로이스
: 배우: 오지엘 노자키[29]
: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 노부나가로부터 허락을 받아 아즈치에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고우와 아즈치성에서 면회했을 때, 손등에 키스하는 등의 인사가 고우를 놀라게 했다.
; 코안
: 배우: 에토 칸사이
: 약사.
: 이치가 고우를 임신했을 때, 그녀의 요청에 따라 낙태약을 처방한다.
4. 방송 일정 및 부제, 기행, 시청률
(시청률은 일본 비디오 리서치 (간토 지방)를 기준으로 함)